'교제하는 척해달라고 딜이라도 해봐야 하나.'보통 이러면 그 거던데.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결혼이니, 뭐니 말하는 꼴이 맘에 들지 않았다.주술계가 변화하면 안 되는 입장이었던 것이다.나는 일부러 웅얼거리지 않고 다 들을 수 있는 소리로 말하고는 밖으로 나왔다.나는 입을 달싹이다가 결국 말을 밖으로 뱉어냈다.뜬금없는 고죠의 사과에 마음 한편이 쿡 찔렀지만, 그때 그를 만난 건 정말로 수작이 아니었으므로 가만히 있었다.'뒤에서 은밀하게 만나는 사람이 있거나 여자한테 관심이 없든가.'"불편해 죽겠네.""여기 아직 준비 안 된 거 같은데, 잠깐 바람이라도 쐴래요?""미안하지만, 난 당신 같은 스타일 별로라."나는 덤덤하게 서랍에서 대일밴드를 찾았다. 그러고서 상처 부위에 붙이려는데, 아직 자리를 떠나지 않은 고죠가 밴드를 빼앗아갔다.반사적으로 돌아본 그곳에는 내가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고죠가 서 있었다."힘으로만 뒤집을 수 있는 판이라면 진작 했어."'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오늘은 그래도 예의는 차렸군."며칠 전까지만 해도 냉랭했던 부녀 사이가 아니던가.이래서야 말 걸어도 되나?그때 품었던 앙금을 한껏 표현하며 비소했다. 그러자 상대방은 나를 지그시 쳐다보다가 응수한다.뭐 다 좋은데, 여자를 좋아하는 건지 아닌 건지는 잘 모르겠네.모도리ㅣ 202106.30.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고죠가 교사로 있는 주술고에 온 것도.나는 살짝 돌아간 고개를 바르게 하며 눈을 치켜떴다."제 발에 저렸나."나는 '또 무슨 잔소리이실까.' 혀를 차며 당주님의 서재로 향했다."또, 또라이라뇨, 아가씨!""교제라도 하는 걸 증명하면 가보를 주지. 가보를 준다는 게 무슨 의미일지는 너도 잘 알고 있겠지."'함정 아냐?'"나랑 사귀어요."내가 알고 있는 고죠 사토루는 기인 중의 기인이었다.나는 찜찜했던 마음을 사과로 털어버렸다가, 예상치 못한 대답에 그 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픽, 웃어버리고 말았다.最終戰 팸미션그런데 누군가가 내 말을 잘라버리고 버럭 호통을 쳤다.당주님과 꼭 닮은 오빠가 설치는 꼴을 보기 싫었던 나는,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맘먹는다.아버, 아니 당주님도 그 꼰대들 중의 한 명이면서 저리 행동하는 꼴이라니."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때리시는 버릇은 여전하시네요.""그럼 왜?""오늘은 끼 안 부렸잖아."이른 시간이라 뷔페 음식도 다 일부만 차려져 있었고 웨이터들만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너도 나랑 오래 얘기하긴 싫을 테니 본론부터 말하마."나는 그에 반하는 입장이긴 했으나, 당주님과 자주 마찰을 일으켜서 평판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끼 부린 건 맞아요."말을 들어보니, 꼰대들이 화친 파티 시작 시간을 다르게 알려준 모양이다."결혼할 나이구나."나한텐 잘된 일이지만.전자의 경우에는 보통 당주가 급작스레 죽었을 때 같은 상황에서 이루어지고, 두 번째가 통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관례 같은 거였다."그거 말고-"겸손할 줄 모른다는 소문 때문에 색안경을 끼고 있었던 모양이다.내가 의심의 눈초리로 쉽사리 수락하지 않자, 그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이런 뻣뻣한 태도에 당주님은 맘에 들지 않으셨는지, 성큼성큼 다가와서 다짜고짜 뺨을 때리셨다.나는 고죠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으며 습관적으로 다리를 꼬았다. 그런데 그 순간 바로 옆에서 빈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켁! 크흠. 뭐, 뭔 소리예요?""좋은 의미로 또라이라고 한 거예요. 이 썩어빠진 곳을 개혁하겠다는 걸 보고.""당신 또라이잖아요?"호기심이 생긴 나는 밖으로 가려던 방향을 틀어 그녀에게 다가갔다.저번 일은 내가 오해했어. 그냥 우연히 겹친 거뿐인데, 내가 예민했군."당주가 되게 도와주세요."어차피 목적을 숨기고 사귀긴 그른 거 같은데, 다 말해버릴까. 미친 척하고."좋아.""어르신들이 시킨 건 아니지만…….""입은 험해도 머리는 잘 돌아가서 다행이구나."고죠는 날 발견하고 예의상 인사해주었다.정말 최후의 수단으로 계약 연애를 생각해봤다. 그러나 그 남자가 뭐가 아쉬워서 나랑 계약 연애를 한단 말인가.나는 근처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서 그에게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