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선교사 피터 패티슨, 제2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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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reo
작성일25-06-21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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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선교사 피터 패티슨, 제2의 고향 한국을 회고하다의료선교사 피터 패티슨 박사가 최근 서울 종로구 새문안교회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며 미소짓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하고 싶은 게 고작 그런 거라면 우린 지원할 수 없다.” 1960년대 22살의 영국 케임브리지 의대생인 아들이 해외로 의료 봉사를 떠나겠다는 뜻을 밝히자 그의 부모는 격노했다. 전도유망한 아들이 기대치 않은 방향으로 진로를 고집하자 학비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아들이 대학 입학 후 기독교에 귀의한 것부터 못마땅했던 터였다. 하루아침에 부모로부터 절연당한 이 청년은 1966년 영국 의학연구위원회(MRC) 소속 외과의사로 한국 땅을 밟았다. 경남 창원 국립마산결핵요양소(현 국립마산병원)에서 16년간 척추결핵 아동을 비롯한 가난한 환자 4만여명을 무료로 진료한 의료선교사 피터 패티슨(88·한국명 배도선) 박사다. 가족과 멀어진 아픔을 딛고 물설고 낯선 이국땅에서 헌신한 그는 77년 대영제국훈장(OBE), 82년엔 한국에서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훈했다. 의료선교단체 한국누가회 등 한국교회 주요 선교단체 설립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제 아흔을 앞둔 그가 한국기독교의료선교협회 초청을 받아 다시 한국을 찾았다. 이에 맞춰 그의 일대기를 담은 ‘닥터 패티슨의 특별한 처방전’(좋은씨앗)도 출간됐다. 최근 서울 종로구 새문안교회에서 만난 패티슨 박사는 보청기를 착용하고 이동할 때 종종 지팡이를 사용했지만 인터뷰에선 나이가 무색할 만큼 또렷하게 한국에서의 추억을 유창한 한국어로 회고했다.-한국 이름이 참 정겹습니다.“배도선, 한국 친구들이 지어준 이름입니다. 한자는 길 도(道)에 착할 선(善)을 씁니다. ‘선한 길’이란 의미가 있습니다.”-오랜만의 한국 방문인데요.“제가 1982년에 한국을 떠났습니다. 그때 비하면 한국은 정말 많이 변했지요. 이전보다 건물이 다 커졌습니다. 거리에 차도 많아졌고요. 그간 한국을 몇 번 찾았지만 올 때마다 항상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한국은 제2의 고향입니다. 자녀 4명도 모두 한국서 태어났습니다.”(웃음)76년 가포동 사택에서 그의 아내와 네 자녀가 함께한 모습. 좋은씨앗 제공-한국 오기 전 부모와 절연하는 아픔도 있었습니다.“젊었을 때 저도, 부모님도 참 힘든 시기를 겪었습니다. 물론 두 분을 사랑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더 사랑했습니다. 그때 참 눈물 많이 흘렸습니다.구약성경의 야곱을 아의료선교사 피터 패티슨, 제2의 고향 한국을 회고하다의료선교사 피터 패티슨 박사가 최근 서울 종로구 새문안교회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며 미소짓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하고 싶은 게 고작 그런 거라면 우린 지원할 수 없다.” 1960년대 22살의 영국 케임브리지 의대생인 아들이 해외로 의료 봉사를 떠나겠다는 뜻을 밝히자 그의 부모는 격노했다. 전도유망한 아들이 기대치 않은 방향으로 진로를 고집하자 학비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아들이 대학 입학 후 기독교에 귀의한 것부터 못마땅했던 터였다. 하루아침에 부모로부터 절연당한 이 청년은 1966년 영국 의학연구위원회(MRC) 소속 외과의사로 한국 땅을 밟았다. 경남 창원 국립마산결핵요양소(현 국립마산병원)에서 16년간 척추결핵 아동을 비롯한 가난한 환자 4만여명을 무료로 진료한 의료선교사 피터 패티슨(88·한국명 배도선) 박사다. 가족과 멀어진 아픔을 딛고 물설고 낯선 이국땅에서 헌신한 그는 77년 대영제국훈장(OBE), 82년엔 한국에서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훈했다. 의료선교단체 한국누가회 등 한국교회 주요 선교단체 설립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제 아흔을 앞둔 그가 한국기독교의료선교협회 초청을 받아 다시 한국을 찾았다. 이에 맞춰 그의 일대기를 담은 ‘닥터 패티슨의 특별한 처방전’(좋은씨앗)도 출간됐다. 최근 서울 종로구 새문안교회에서 만난 패티슨 박사는 보청기를 착용하고 이동할 때 종종 지팡이를 사용했지만 인터뷰에선 나이가 무색할 만큼 또렷하게 한국에서의 추억을 유창한 한국어로 회고했다.-한국 이름이 참 정겹습니다.“배도선, 한국 친구들이 지어준 이름입니다. 한자는 길 도(道)에 착할 선(善)을 씁니다. ‘선한 길’이란 의미가 있습니다.”-오랜만의 한국 방문인데요.“제가 1982년에 한국을 떠났습니다. 그때 비하면 한국은 정말 많이 변했지요. 이전보다 건물이 다 커졌습니다. 거리에 차도 많아졌고요. 그간 한국을 몇 번 찾았지만 올 때마다 항상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한국은 제2의 고향입니다. 자녀 4명도 모두 한국서 태어났습니다.”(웃음)76년 가포동 사택에서 그의 아내와 네 자녀가 함께한 모습. 좋은씨앗 제공-한국 오기 전 부모와 절연하는 아픔도 있었습니다.“젊었을 때 저도, 부모님도 참 힘든 시기를 겪었습니다. 물론 두 분을 사랑했지만 예수 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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