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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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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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fht43oso
작성일25-06-07 15:32 조회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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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탄자니아의 한 초등학교에서 스와힐리어로 번역한 한국 동화책을 든 학생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 거대한 아프리카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화가 언어다.아프리카 대륙 내 언어의 수는 방언 포함 여부 등 기준에 따라 다른데 적게는 1천여개부터 많게는 3천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이집트, 모로코, 알제리 등 아프리카 북부에서는 아랍어가 공용으로 쓰이고 사하라 사막 이남에서는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등 서방 언어를 공용어로 쓰는 국가가 많다. 과거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지배한 유럽 제국주의의 유산 중 하나가 언어인 셈이다. 식민지 시대를 벗어난 아프리카 국가들이 서방 언어를 계속 쓰는 데는 다양한 종족의 소통에 유리하다는 실리적 이유가 크다. 이런 상황에서 스와힐리어는 아프리카 토착어의 자존심을 지키는 언어로 꼽힌다.반투어 계열 언어인 스와힐리어는 아프리카 동남부 10여국에서 쓰인다. 사용 인구가 약 2억명으로 추정된다. 탄자니아, 케냐, 우간다 등 3개국에서는 스와힐리어가 공식어로 돼 있다. 콩고민주공화국, 르완다, 부룬디, 잠비아, 모잠비크, 인도양 섬나라 마다가스카르 등의 경우 일부 지역에서 스와힐리어를 쓴다.스와힐리어는 아프리카 동쪽 해안 지역에서 만들어진 뒤 아프리카 내륙으로 퍼졌다.특히 인구가 6천만명이 넘는 탄자니아는 스와힐리어를 가장 활발하게 쓰는 국가다.탄자니아가 1961년 영국에서 독립하고 나서 초대 대통령 줄리어스 니에레레는 국민 단결을 위해 스와힐리어를 국어로 지정했다.아프리카에서는 대륙 통합 수단으로 스와힐리어 사용 인구를 넓히려는 움직임이 있다.아프리카 내 최대 국제기구 아프리카연합(AU)은 2022년 스와힐리어를 실무언어로 지정했다.또 에티오피아, 남아프리카공화국, 가나 등 여러 국가의 대학에서 스와힐리어에 대한 연구·교육이 진행됐다. '제1회 아프리카 스와힐리어 말하기 대회' [한국아프리카학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아라비아반도의 이슬람 국가 오만에서도 스와힐리어를 쓰는 인구가 있는 점이 흥미롭다. 오만 제국이 1698년부터 잔지바르(현재 탄자니아 자치령)를 통치한 것을 계기로 많은 오한韓민족 정체성 지키려는 조선족도 있어 조선족들이 한국을 오갈 땐 대부분 연길공항을 거친다. 그런데 지금은 이 연길공항마저도 이름 순서에서 한글이 뒤로 밀려났다. 과거에는 '연길'이란 글자가 앞에 있었다. 백두산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가이드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중국어가 유창하지 않다면 모든 문제를 가이드를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이 가이드들의 대부분이 바로 조선족이다.조선족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지금껏 여러 번 중국에서 조선족 가이드와 함께 취재를 했지만 이들에게 깊은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었다. 마침 천지가 폭설로 문을 닫았고, 제설이 늦어져 산장에 발길이 묶였다. 시간이 많았다. 그들에게 말을 걸어봤다. 그러자 교과서나 나무위키가 전하지 않는, 그들의 생애사가 드러났다. 그게 퍽 흥미롭다. 물론 순전히 그들 사이에서 구전되는,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거짓말이 개척한 '간도'이야기의 출발지는 간도다. 19세기 간도는 빈 땅이었다. 청나라는 자신의 조상인 만주족의 발원지로 여겨 이주민 출입을 제한했고, 조선 또한 백성들이 국경을 넘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조선 후기 백성들은 너무나 가난했다. 또 두만강에 면한 함경도 주민들은 지형이 대부분 산이라 농사지을 땅이 없었다. 그때 조선 백성들에 눈에 들어온 것이 두만강 중간에 있는 작은 섬이었다. 이 섬까지 가는 건 청나라와 조선 관리 모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주민들이 하나 둘 거기서 밭농사를 지었다. 거기서 조금 더 가면 더 넓은 만주 땅이 나온다. 그래서 눈치껏 몰래 강을 건너 농사를 지었다. 아침에 강을 건너 만주에서 농사를 짓고, 저녁에 돌아오는데 관리가 나와서 "뭐하다 왔냐?"고 하면 저 "'사이 섬(간도間島)'에 갔다 왔다"고 거짓말을 해 풀려났단다. 그래서 섬이 아닌데도 섬 '도'자가 붙은 지역이 탄생하게 됐다. 두만강 건너 땅은 북간도, 압록강 건너 땅은 서간도라 부르게 됐다. 그리고 일제강점기가 왔다. 그간 생계가 주된 간도 이주의 이유였는데 이젠 독립운동가들도 왔고, 일제에 의한 강제이주도 시행되며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간도 사람들이 콩 농사를 지으며 잘 산다는 소문이 돌았다. 남한 지역 사람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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