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방공호에 들어간 지 며칠 만에 히틀러는 마지막 '희망회로'마저 끊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끔찍한 소식을 접한다. 그의 파시즘 '깐부'였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1945년 4월 28일 애첩 클라라 페타치(Clrara Petacci)와 함께 이탈리아를 탈출하려다 밀라노에서 반정부 게릴라에 체포돼 총살당했다는 소식이다. 히틀러의 유언장엔 그가 정말 국가를 걱정했는지 의문스러운 대목이 나온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무솔리니의 최후는 정말 끔찍했다. 그의 시체는 마을 주유소 대들보에 거꾸로 매달려 내걸렸다. 그곳에 주민들이 몰려와 시체에 침을 뱉고 몽둥이찜질을 해댔다. 소련군에게 체포되면 무솔리니가 당한 봉변이 고스란히 자신과 애인 에바 브라운의 몫이 될 것을 직감한 히틀러는 4월 29일 유언장을 작성하고 그다음 날 에바 브라운과 함께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다.괴벨스를 비롯한 부관들이 히틀러 부부의 사체를 담요에 말아 허겁지겁 방공호 밖으로 메고나와 구덩이를 파고 던져놓고 휘발유를 붓고 불을 지른다. 잠깐 묵념이라도 하려는데 소련군의 포격에 천지가 진동하자 모두 서둘러 방공호로 튄다. 그렇게 히틀러는 에바 브라운과 구덩이에 팽개쳐진 채 온전히 타지도 못한다.무솔리니와 히틀러의 소식을 접한 일본의 '전범 수괴' 도조 히데키(東英機) 역시 혼비백산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1945년 8월 미군에 체포된 히데키는 자신이 하달한 육군훈령1호인 "살아서 포로의 치욕을 당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보겠다고 권총자살을 시도했지만, 미군이 미군의 피를 수혈해가면서 악착같이 살려서 12월 교수대에 세운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 수괴' 3인방 모두 그 우열을 가리기 힘든 비참한 최후를 맞은 셈이다.영화 속에서 소개되지는 않지만, 후일 공개된 마지막 여비서 드라우틀 융에가 타이핑한 히틀러의 유언장은 '개인적 유언장(Private Will)'과 '정치적 유언장(Political Testament)' 2개의 문서로 구성돼 있다.# 개인적 유언장 1. 나의 소장 미술품은 고향 린츠(Linz)시 미술관에 기증한다.2. 내 손때가 묻은 일상용품들은 쓸 만한 것들은 우선 나의 연인 에바 브라운의 형제자매들에게 주고(에바 [서울경제] 의정 갈등 장기화의 여파로 미국 등 해외 병원으로 떠나는 간호사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수술·입원 환자 수가 크게 줄며 경영난을 마주한 대학병원 등이 줄줄이 신규 간호사 채용을 중단해 고용 불안정이 심화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12일 서울경제신문이 분석한 최근 5년 사이 보건의료인 영문자격서 발급 현황에 따르면 간호사의 증명서 발급 건수는 2020년 871건에서 2024년 7232건으로 8.3배 뛰었다. 발급 건수와 증가율 모두 전체 업종 가운데 압도적 1위였다. 의사의 경우 247건에서 590건으로 약 두 배 늘었지만 증가율로 따지면 한의사를 제외하고 가장 낮았다.해외 취업 동향을 가늠할 수 있는 다른 수치를 살펴봐도 간호사의 ‘탈한국’ 추이는 유독 뚜렷하다. 미국간호사국가시험원이 공개한 면허 시험 ‘엔클렉스(NCLEX)’ 응시자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 응시자 수는 2020년 198명에서 지난해 2600여 명으로 집계됐다. 심지어 엔클렉스 시험은 국내에서 실시되지 않아 근처 일본·홍콩·대만 등을 다녀와야 하는데도 응시자가 13배나 늘어난 것이다.특히 미국 간호사 면허를 ‘혹시 몰라’ 따두는 수준을 넘어 해외 에이전시와 채용 연계 계약을 맺고 출국까지 하는 행동파 수강생이 늘어났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평가다. 강동엔클렉스 학원의 강 모 총괄실장은 “2023년 말부터 에이전시 계약자 수는 30~40명에서 100명대로, 출국자 수는 20명 내외에서 30~40명대로 늘었다”고 전했다.간호사들이 급격히 해외로 눈을 돌린 데는 의정 갈등발 구직난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대한간호협회의가 발표한 ‘신규 간호사 채용 현황 3차 조사’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 44개 병원에서 올해 신규 간호사로 채용한 인력은 2901명에 그쳤다. 2023년(1만 3211명), 전년도(8906명)보다 70~80% 가까이 하락한 수치다. 의정 갈등의 여파로 병원 대부분이 비상경영체계에 돌입하며 신규 채용을 포기했기 때문이다.엔클렉스 면허를 딴 뒤 본격적으로 이직을 준비하고 있는 4년 차 간호사 A(27) 씨는 “전공의 파업 당시 인턴과 레지던트 일까지 떠맡게 된 간호사들의 심리적·육체적 부담이 커졌지만 인력 충원은 없어 노동 강도만 높아졌다”고 전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