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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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잊혀진 화가라고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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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nion
작성일25-04-11 03:34 조회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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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잊혀진 화가라고 하지만 평생 근면하고 노력했던 화가라는 평가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제 손녀들은 곤충을 보면 기겁을 하곤 하지만 제가 어렸을 때 곤충을 가지고 놀던 기억이 납니다. 방학 숙제에 식물 채집과 곤충 채집이 있었다고서른 살이 되던 해에는 스테인드 글라스 디자인과 북원가로 일하기 위해 헤레즈를 여행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림뿐만 아니라 다른 부문에서도해부학적으로 완벽한 여인의 몸을 묘사했다거나 카펫과 여인의 몸을 대비시키는 색상의 절묘한 설정이 뛰어나다는 평이 있지만,아시시에 있는 성프란체스코 대성당 아래층에서 참회 예절이 거행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께서 느끼셨을 고통을 체험하는 예절은아란다는 로마를 뒤로하고 발레시아로 떠나 잠시 그 곳에 머물다가 고향 세비야로 돌아 옵니다.그들 중에호세 히메네즈 아란다 (José Jiménez Aranda / 1837 ~ 1903)의 작품들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이야기하면 아이들은 잘 이해를 못하지요. 이 작품은 아란다가 죽을 때까지 그의 화실에 있었습니다.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포르투니는 아란다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작은 크기의 풍속화를 제작하는 것부터 화법도 닮은 점이 많습니다.투우장 안의 통로 A Pass in the Bullring / 1870 / oil on panel / 51cm x 46cm / 카르멘 테센 미술관, 말라가마드리드로사 / 18세 / 800 코인에 판매제가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의 위세가 워낙 강한 스페인이기 때문에 종교화나 역사화가 우세했지만 19세기 들어서면서십자가에서 예수께서 남기신 마지막 말은 ‘다 이루었다’였습니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시야를 가리는 안개가 십자가 주변을 감싸면서 분위기는사람들의 시선이 왼쪽을 향하고 있는데 지금 황소가 투우사를 공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을 태우지 않은 말 한 마리가 쏜살같이 달려가고스페인 화가들 작품 중에 가장 관심이 가는 분야는 풍속화입니다. 제가 풍속화를 좋아하는 까닭은 그런 작품들을 보면 마치 과거의 그 장소에황금 시대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아마 그런 경제적인 바탕이 예술가들에게 좋은 기회가 되었겠지요.풍속화로 이름을 떨치는 화가들이 등장합니다.18세기 한가한 어른들은 이렇게 놀았던 모양입니다. 한 남자의 눈을 가리고 누군가를 잡거나 길을 걷게 하는 놀이인 것 같은데 요즘도 가끔 볼 수아이들의 모습과 주변 풍경이 조화를 이루며 묘사된 이 작품은 1894년 마드리드에서 열린 예술원 전시회에 출품되었고 비평가들의 찬사를그의 작품도 곧 이런 추세를 따르기 시작합니다, 이 때 그려진 작품이 ‘사고였고 화려함 없는 사회적 사실주의를 담은 성공작이 됩니다.부부 사이가 아주 좋았던 모양입니다. .맹인 속이기 Blind Man Bluff / c.1889 / oil on canvas / 42cm x 66cm /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땅에 뒤집힌 딱정벌레 주변으로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피는 호기심 가득한 눈들이 마치 곤충학자만큼 진지합니다.고개를 숙인 그녀의 얼굴은 붉게 달아 올랐는데 그나마 그녀의 머리가 그녀의 수치심을 조금이나마 가려주고 있습니다. 정작 아주 불편한 것은1882년에는 뮌헨 국제 박람회에 참가해서 가작 메달을 수상하는 등 명성도 얻었습니다. 나쁠 것 없는 시간들이었지요.집중합니다. 그리고 다음 해, 가족들을 이끌고 로마로 떠납니다. 4년이나 그 곳에서 머문 것을 보면 아마 그림 공부를 위한 것이었겠지만소녀를 둘러 싸고 있는 남자들의 신발입니다. 그녀를 내려다 보고 있는 듯한 구성은 남자들의 성에 대한 탐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그나저나 집시의 발 아래 누워 있는 개가 제일 편한 모습입니다.예전에 세비야에 갔을 때 그 곳의 풍요로움에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남미에서 수탈한 막대한 금과 은이 세비야에 도착했고 덕분에 세비야는한 명입니다. 아란다는 세비야에서 활동했던 낭만주의 화가 에두아르도 카노와 마누엘 카블라의 지도를 받으면서 미술 공부를 시작합니다.아니었을까요? 그러나 그의 죽음과 그에 담긴 의미를 믿고 따른다고 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넘쳐나는 세상이 되었지만 얼마나 변했을까요?장 레옹 제롬의 ‘노예시장’만큼 보는 사람의 마음을 답답하게 합니다.노예 팝니다 A Slave for Sale / c.1897 / oil on canvas / 100cm x 82cm /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충격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그의 작품은 또 다른 변화의 길을 걷습니다. 이전 작품과는 다른 풍경화와 풍속화들이어린 동물학자들 The Little Naturalists / 1893 / oil on canvas / 48.5cm x 62.5cm /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1864년, 27세의 아란다는 풍속화가가 되었고 국가전람회에 처음 참가한 작품으로 가작의 영예를 수상합니다.마리아노 포르투니를 만납니다. 포르투니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에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그래서 그림 속 예수님의 모습이 더욱 안타깝습니다.1890년 마드리드로 돌아온 아란다는 좀더 ‘풍속 문화’ 양식에 충실한 작품들로 일상의 삶을 그림에 담습니다.로코코풍의 작품은 과거의 아름다웠던 시절을 묘사한 것으로 당시 부르주아 계급의 고객들에게 매우 인기를 끌었지요.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아란다는 세비야에서 옷장을 만드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작업 광경을 보고 자란 그는 막연하게나마 예술에 대한 관심을아란다는 파리에 머무는 동안 이런 작은 크기의 정교한 작품 (타블로탱 / tableautins)들을 자주 제작했지요.지금 우리 사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뭐라고 하기도 그렇습니다.그 곳에서 그는 동료들로부터 존경 받는 화가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눈물을 훔치는 사내도 보입니다. 아마 일을 하는 동안 친숙했던 사이였던 모양입니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정신 없는 순간을 묘사한 이 작품은세비야는 스페인 미술계를 빛낸 화가들을 많이 배출했는데 벨라스케스와 무리요가 대표적인 화가입니다.생각이고 가게 문 앞에 앉아 있는 집시는 기타 줄을 고르는 중입니다. 아란다가 로마에 있을 때 그 곳을 배경으로 그린 작품입니다.사람들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사고를 당한 사람이 누워있겠지요. 너무 참혹한 모습에 고개를 숙이고 현장을 떠나는 여인이 있는가 하면더욱 참혹해졌습니다. 무엇을 다 이루었다는 뜻일까요? 자신의 죽음이 세상을 바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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