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항문 질환은 성인뿐 아니라 신생아부터 청소년기까지의 아이들에게도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그래서 성인 항문질환에만 익숙한 대부분의 부모들은 항문 주변의 통증, 배변 시 통증이나 혈변 등의 증상들이 아이들에게 나타나면 크게 당황하게 된다. 소아 항문질환은 성인과 비슷하지만 그 치료에 있어서 분명히 다른 부분들이 있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소아청소년기에 발생할 수 있는 항문질환은 항문 주위 농양 및 치루, 치열 등이 있으며 유아기에는 직장탈출증이 간혹 발생하기도 한다. 많은 질환들이 아이의 성장에 따라 식이가 변화하면서 나타나는 배변 습관의 변화에 의해 발생하는 사례가 많다. 따라서 수술적 치료보다는 좌욕, 식습관 교정 등의 보존 치료를 하며 아이의 성장에 따라 증상의 호전을 기대해 보는 경우가 많다.◇항문 주위 농양·치루항문 주위 농양과 치루는 3개월에서 3세 사이에 주로 발병하고 특히 1세 미만의 남아에서 흔하다. 청소년기에 발생할 경우, 치료에 반응이 없거나 자꾸 재발하는 경우, 발생 양상이 일반적이지 않고 다를 경우에는 크론병 같은 염증성 장 질환을 고려해야 한다.항문 주위 농양의 원인은 정확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항문의 분비샘에서 발생한 염증이 진행되면서 농양을 형성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항문 주변이 붓고 빨개지며 통증을 유발한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그 병변에서 농이 배액 되기도 한다. 농양이 크고 잘 형성돼 있다면 절개 배농술을 시행할 수 있지만 아직 농양이 잘 형성돼 있지 않고 염증만 있는 상태라면 좌욕을 해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절개 배농술을 시행한 이후에도 좌욕을 통해 염증을 완화하고 상처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다.항문 농양 환아의 약 3분의 1 정도에서 농양이 피부를 뚫고 누공을 형성해 치루를 형성하게 된다. 성인의 치루는 보통 전후방에 생기는 데 반해 소아의 치루는 주로 측방에 발생한다. 대개는 누공이 직선형이고 깊이가 얕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치루가 발생하면 이로 인해 농양이 재발할 수 있기 때문에 1세 이상의 환아에서 치루가 형성돼 호전되지 않는다면 치루절개술을 시행한다.청소년기에 복잡성 치루가 발생하지난달 28일은 ‘서해 수호의 날’이었다. 2016년 제정된 기념일로 3월의 넷째 금요일이다.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전 등 북한의 서해 도발에 맞서 고귀한 생명을 바친 호국 영웅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행사를 갖는다. 이순신 장군이 ‘한산섬 달 밝은 밤에’로 시작하는 시조를 남겼듯이 문과 무는 별개가 아니었다. 임진왜란 때의 공신 중 다수가 문관이었다.문인과 군인이 아주 가까워진 적이 있었다. 6·25 발발 직후 임시 수도 대전에서 문총구국대가 결성되었다. 문인들이 흩어져 피란 갈 것이 아니라 글로써 보국하자는 뜻을 갖고 모였다. 국군 정훈국 소속으로 군인 신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문총구국대 아래 3개 단체가 만들어졌다. 공군종군문인단과 육군종군작가단이 대구에서, 해군종군작가단은 부산에서 결성되었다. 1951년의 일이었다. 9·28 수복 후 문총구국대는 없어지고 군별로 종군작가단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활동을 계속했다.육군종군작가단은 강연회 8회, 문학·음악의 밤 14회, 문인극 공연 6회, 부대가 및 군가 작사·작곡 수십 곡의 실적을 남겼다. ‘전선문학’이라는 문예지 7권을 발간하기도 했다. 보병 제3사단 23연대에서 원산 탈환전에 12일 동안 종군한 유치환은 당시 창작한 시를 모아 전시에 시집 ‘보병과 더불어’를 펴냈다.전쟁이 끝나면서 이 단체들은 해산했지만 해군은 소식지 ‘해군’을 펴내는 일에 주력해 올해 3월호로 570호를 발간했다. 2011년 2월 11일 ‘NAVY 문인클럽’이 창립되었다. 군인의 사기 앙양과 군에 대한 민의 관심을 촉구하고자 만들어진 이 단체는 해군사관학교 인문학 특강, 해군 행사 시 함정 내 특강, 관함식 참여, 해군기지 견학, 백령도 견학, 호국 백일장 심사, 인천상륙작전 관련 등대 유적지 탐사, 잠수함 손원일함 견학 등을 했다. 민과 군이 합심한 좋은 사례들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클럽의 일원으로 2018년에 해군사관생도 세계순항훈련에 참가, 충무공이순신함에 동승해 세계의 주요 항구를 생도들과 함께 돌아보기도 했다. 생도들이 씩씩해서 안심하고 왔다.